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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의 개황:

칭사길잡이 0 8,229

□ 청도(칭다오) 소개


1. 위치 
청도는 산동반도의 서남쪽,동경 120˚9´14˝,북위 36˚4´11˝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과 남쪽은 황해바다를 잇대여 있고 서쪽과 북쪽은 내륙과 연결되어 있다. 중국의 이름 난 항구이자 경공업·무역·관광도시로서 국무원 지정 국가관광 휴양구역의 하나임.

2. 인구/면적 및 관할도시 : 
총면적은 10,654㎢인데 교주시·지묵시·래서시·평도시·교남시 5개의 현급시를 관할하면서 시남-시북-사방-이창-성양-노산-황도등 7개 시내구역을 포함하고 있다. 시내면적은 1,305㎢, 총인구는 690만명,시내인구는 230만명이다.

 

3. 기후 
청도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고 한면이 육지와 연결된 계절풍 대륙성기후로 해양의 영향을 받아 겨울에 춥지 않고 여름에 무덥지 않다. 

연 평균 기온은 12.2℃,그중 겨울 평균기온이 0.3℃,여름 평균기온은 23℃이며,연 평균 강우량은775.6㎜임.

 

4. 형성 
지질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20억년전에 이곳은 망망한 바다였고, 지각의 융기와 상승을 거쳐 점차적으로 사면이 바다인 섬이 되었다 함.

후에 계속적인 화산운동과 단층활동으로 대륙과 연결되어, 3면이 바다이고 한면이 산인 오늘의 모양을 형성하였다 함.

 

5. 경제 
청도는 오늘날까지 106년(1891∼1997)의 발전을 거쳐 경공업 (특히 방직공업), 해상무역, 해양연구, 휴양지의 특색으로 이름 난 바다도시가 되었음. 지리적 위치가 우수하고 자연조건이 좋고 전국 14개 연해 개방도시중의 하나이자 15개의 경제중심도시중의 하나로서 국가계획에서 省級에 상당하는 경제관리권한을 향유하고 있음.

6. 산업 
청도의 방직공업은 역사가 오래되었고 기초가 탄탄하여 기술발전에 명망이 높고, 고무공업은 전국 제2위의 규모이며, 전자공업은 생산량이 산동성의 1/3을 차지하고 있음.

음료수와 시품공업은 전통이 깊은데, 특히 노산의 샘물로 만든 청도맥주는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7. 수출상품 
청도는 국가의 중요한 수출기지로 5개 무역항구의 하나이다. 5백여가지의 물품을 멀리 5대주 140여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8. 대외관계 
청도는 국가 대외경제기술 합작을 실시한 후 일본의 오사까, 한국의 대구시와 자매도시를 맺고 있다. 청도항구는 이미 한국 부산,일본의 여러항구와 자매 항구의 관계로 해외의 26개 상사와 금융기구가 청도에 상설사무소를 설치하고 있음.

청도의 여러 개발구는 교주만 서안의 황도 경제기술 개발구와 동부의 첨단과학공업단지로 나눠 있음. 개발구 안에 있는 외자기업에 대해서는 5년간 면세의 혜택을 주고 있음.


9. 생김새/기질 
청도인은 키가 크고,남자의 경우 얼굴이 각이 지고,배가 나온 사람이 많다고 함(청도맥주를 애용한 이유?ㅎㅎ)  

여자는 인물이 좋아 아름다운 부인을 얻고자 하면 청도로 가라는 말이 있다. 중국은 지역이 넓어 각 지방마다 말이 같지 않은데 청도사람들이 하는 말은 산동말에 속하는 것으로 표준어와 많이 유사하다.

연태·제남·곡부등의 말과 달리 듣기에 좋다. 청도사람들의 성격은 활달하고 솔직해서, 되면 되고 안되면 직접 거절하며 이런 이유로 말다툼이

빚어진다. 그래도 곧 화해를 하는 것이 청도사람들의 기질이다.

10. 주요산품 
청도 T.V(현 Hisense T.V), Haier냉장고등 가전계열, 雙星운동화, 청도맥주, 노산 광천수, 청도 특유의 옥수수연

 

11. 특산품 
조가비공예품-조개를 먹은후 청도 貝雕廠에서는 이껍질을 이용, 기계로 갈아 칠을 하고 틀에 붙여 공예품을 만듬. 이 상품에는 주로 인물그림, 꽃, 동물들이 새겨지며 이중 九龍璧,天壇등은 매우 유명하여 일본, 동남아 등으로 수출하고 있음.

청도 노산 花崗石은 북경인민영웅 기념비,모택동 기념관, 인민대회당 및 일본, 한국등의 대사찰 건축은 모두 청도 노산에서 채취한 것이라 함.
 

 

□ 장보고대사의 법화원(山東省 石島 소재)

1. 장보고대사 적산법화원비
이곳 영성시 석도진의 적산법화원은 원래 장보고대사(서기? - 846년)가 건립하였다. 장대사는 신라 완도사람으로 일찍이 당에 건너가 무령군군중 소장을 역임했다. 귀국해서는 완도에 청해진을 창설하고 신라·당·일본간의 국제해운무역을 경영하여 해상왕의 명성을 떨쳤다. 장대사는 그의 본원사찰로서 석도의 적산,완도의 상황봉, 제주도등지에 법화원을 창건 하였다. 日僧 엔닌 일행은 이절의 손님으로 오래 머물며 갖가지 편의를 대접받았고 장대사의 도움으로 마침내 귀국할 수 있었다. 당시 신라인들이 모여 살던 신라방과 그 자치기관은 이곳 석도항 부근에 있었다. 세월은  흘러 옛 절의 모습은 간데 없으나.....(생략)
  
신라의 무장이며 해상활약가로서 당나라 徐州에 건너가 武寧軍少將에 올랐다. 그는 일찍이 황해와 남해의 해상권을 장악,당과의 무역은 물론 왜까지 영향을 미쳐 황해의 왕자라 일컬었다. 서기 839년 神武王을 즉위시켜 咸義軍使가 되고 그후 文聖王2년(서기840년)에는 최초로 무역사절을 일본에 보냈는가 하면 당나라에 遣唐賣物使를 보내는 등 장보고는 문성왕8년(서기846년)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三國史記,三國遺事    新唐書東國通鑑入唐求巡禮記에 기록 되어있음.

2. 石島(스따오)소개
석도는 중국인들도 잘모르는 조그만 어촌으로 山東省 榮成市에 소재하며. 청도에서 석도 까지는 360㎞로 택시 5시간, 장거리 버스 7-8시간이 소요되는 산동반도 최동단에 위치하고 있다. 석도마을은 주민 대부분 자전거를 이용하며 버스나 택시는 보이질 않음. 석도의 赤山法華院(츠산 화화위엔)은 9세기중엽 신라말 신라·당·일본 3국간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장보고대사를 기념하는 곳으로 지금은 대웅보전이 복원되어있다. 법화원내의 장보고대사 기념탑은 통일원산하의 사단법인 세계한민족연합회와 산동성 영성시가 합작해서 만든 탑으로 현지의 붉은 화강암을 재료로 신라시대와 현대 건축양식을 혼합, 높이 약15m 규모이며, 앞면에는 장보고의 생애와 위업이 한문으로, 뒷면에는 한글로 적혀있다. (동아일보사 지구촌여행 중국편 참조)

 

 


□ 산동성 주요도시 : 산동,동방문화의 메카 공자의 고향

1. 고대문화 창시자 공자를 키워낸 曲阜(취후)
곡부는 동방의 성스러운 도시로 불리운다. 세계 고대문화의 4대 창시자중의 한 사람이며 2천년간 전해내려온 유학의 선사 공자를 키워 낸 곳이다. 곡부시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더불어 세계3대 성스러운 도시로 일컬어지고 있다. 공자(기원전 551-479)는 이름이 구(丘), 자는 중니(中尼)로 중국춘추시대 말년의 걸출한 사상가,정치가,교육자이며 유학파의 창시자이다. 그는 노나라 추읍(오늘날 곡부시 동남쪽)에서 탄생하였다.선대는 은나라 귀족이었으며 어릴 때부터 가난에 쪼들려 고정적인 스승이 없었다. 벼슬도 여의치 못해 14년동안이나 제자들을 거느리고 여러나라를 주유했다. 공자의 학설은 영향력이 막대하여 줄곧 그를 성인으로 존중했으며, 지금도 매년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곡부의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공자의 탄신일인 음력8월27일은 대규모의 제전이 열려 축제 분위기가 절정을 이룬다.  

2. 산 정상에 하늘이 내린 우물을 이고 있는 泰山(타이산)
태산은 산동성 중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에는 대산,대종으로 불려졌으며 중국 5대 명산중의 하나이다. 태산은 지금으로부터 약25억년전에 산으로 되었는데 산세가 험하고 웅위로우며 아름다울 뿐만아니라 유명한 명승고적이 산재되어있다. 태산의 절정인 1,504m의 옥황산 꼭대기는 직경이 11m 남짓한 작은 우물이있다. 남천문의 유명한 천가(天街)보다 60미터가 높아 天井으로 불리고 있다. 천정은 아주 작을 뿐만 아니라 비탈진 곳에 팠고 주위는 가파른 산비탈여서 지하수가 솟아 오르는 것은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천정에서 매일 수백킬로그램의 물을 길어 산정상의 관리요원의 생활용수로 사용하며 일출을 보러오는 여행객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지질학자들에 의하면 천장은 약 50억년 전에 지진중 화강암이 변질되는 과정에서 생겼다고 한다. 이러한 암석층은 풍화작용에 의해 금이 가고 틈이 생겼으나 깊은 곳의 암석들은 매우 견고하며 물이 스며들지 않아 천정 지하수가 보존될 수 있는 조건을 가능케 한다고 전해진다. 천정의 지하수는 스며드는 깊이가 낮아 암석광물질을 용해하지 못해 염분 함량이 매우 적은 편이다. 

3. 육지의 선경,교통의 천혜요지 煙臺(엔타이)
산동반도의 동쪽끝에 자리잡고있는 연대는 대련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전체면적은 18,000㎢이고 인구는 약 800만명이다. 연대라는 이름은 명나라 (1368-1644년)때에 이곳의 한 야산에 적정을 알리는 봉화대가 설치된 것에서 유래되었다. 일찍이 당,송(618-1729년)때에 벌써 이곳은 중국에서 한국,일본으로 통하는 중요한 항구였으며 당나라로 파견된 일본의 첫사절이 상륙한 곳이다. 신기루의 기이한 광경을 볼 수 있는 지상선경 봉래각과 서예의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는 문봉산의 위나라때 비문은 예로부터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연대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수륙교통이 매우 발달하였으며 인근 연안해에서는 왕새우, 해삼, 전복, 밥조개 등의 해산물이 풍부하게 잡히며 왕새우 생산량은 전국에서 제일이다.
 
4. 산동반도 동쪽끝 威海(웨이하이)
위해시는 산동반도의 동쪽끝에 자리잡고 있으며 한국과는 청도와 함께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이다. 영성시,문등시,내사현과 환취구를 관할하고 있으며 그 면적은 5,436㎢이고 인구는 약 238만명이다. 매주 두차례 인천-위해간 여객선이 취항하고 있으며 거리는 불과 236해리이다. 명승고적으로는 중국 도교 전진파의 발원지 곤유산,진시황이 두 번 올랐다는 성산두,도교의 성지 칠사산,한·중간의 역사적 우의를 상징하는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1,000㎢의 해안선 등 풍부한 관광자원을 갖고 있다.

         
□ 산동성/청도시 개황

1. 일반개황

1) 산동성
- 위치        : 북위34-38사이(한국과유사)
- 행정구역 : 11개성직할시/74개현/2,543개향진/성도:제남
- 면적       : 156,700㎢(중국전체1.6%, 한국의1.5배)
- 주요도시 : 제남,청도,치박,유방,제녕,연대,위해 등
- 지형       : 평원분지64%,산지구릉35%,하천호수1%
- 해안       : 3,000Km(중국전체해안선의 1/6)
- 인구       : 8,610만명(사천성,하남성에 이어 제3위)
- 인구밀도 : 550명/㎢(일반성지역중 중국제1의 인구밀집)
- 민족       : 회족,만주족,몽고족등 38개 소수민족(전체0.6%)
- 기후       : 평균기온 한국과유사,강우량은 한국의 2/3정도
- 산업비중 : 농:공=19:81

 

2) 청도시
- 위치       : 산동반도 남단,동남면은 황해,서북면은 내륙인접
- 행정구역 : 5개현,7개구관할
- 면적       : 10,654㎢
- 해안       : 730Km
- 인구       : 675만명(시중심 128만명)
- 인구밀도 : 612명/㎢
- 기후       : 무더위와 엄동이없는 휴양도시 년평균12.2℃
- 산업비중 : 농:공=11:89

 

 

2. 주요자원 및 산업

1) 주요자원 
- 석유 : 황하하류일대,동영시의 “승리유전”은 중국제2의 유전
- 岩金 : 중국제1의산지,집중분포지역은 연태시관할 지역임
- 석고 : 중국매장량의 70%,최상의 품질
- 기타 : 석탄,철광석,유황석,코발트,다이아몬드,마그네사이트 등 광물자원풍부

2) 주요산업 
- 석유화학 : 치박,동영의 승리유전
- 전자       : 청도의 Haier,Hisense,Acuma등 중국굴지의 대형가전제품 생산기업 및 부품제조업체 산재 
- 기타       : 식품가공업,수산업,기계,방직공업이 유명함


3. 경제현황 ('96년)

1) 국내 총생산
- 산동성 GNP 약5천억원(人民幣,‘95년), 농업생산량 전국1위,공업생산량 전국3위
2) 대외무역
- 수출 104억$, 수입87억$ (총 191억$로 전년대비 45.8%증가) 이중 대한국 교역실적은 수입액 26억$,수출액 16억$로 전체교역액의 22% 차지
3) 주요 교역품목
- 수출:의류 및 부자재(15.2%), 수입:기계설비(19%)
4) 한국의 투자현황
- '95년말 실제투자기준
    602건,약6억$로  한국의 중국투자총액중 33.5% 차지 (2위 천진 11.9%)
    지역별 : 청도 264건,약3억$로 산동성투자의 54.8%를 차지 
    업종 별 : 섬유·의복분야 87건,18% / 가죽·신발분야 72건 14.9%
    진출업체 수: 산동성 1,600여개 업체,청도시 850여개 (95%가 제조업종) 


4. 산동성(청도시) 시장 특성
-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장 인접,교통이 편리하고 자체적으로 인구 87백만명의 소비시장 및 농업,수산품 생산량 전국1위,각종 자원의 매장 풍부
- 산동성(청도시포함)은 한국의 대중투자중 약 35%를 점하여 한국기업의 최대 투자 대상지역이며,특히 중소제조업체의 투자 진출이 활발,이들 업체의 가공무역을 통한 대 한국 수출입 비중이 타지역에 비해 매우 높음
- 청도시는 14개 계획 단열시의 하나로 경제,무역 투자유치 정책집행에 있어 산동성 정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중앙정부의 국무원과 연결되어 있어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
- 청도항은 중국내륙지방 주요산업도시와 철도망으로 연결되어 있어 '96년 화물처리량이 상해, 천진에 이어 3대항구이며, 광석·수입원유·석탄·화학비료의 수출입 창구 역할
 

□ 棧橋(짠치아오)에서 본 청도

청도가 마치 열정적으로 내민 팔과 같은 잔교는 1891년에 청정부에서 군수물자를 운송 하기 위하여 건설한 것으로 청도의 제일 가는 부두였다. 당시 길이가 200m, 넓이가 4m로 1931년에 이르러 청도大港부두(여객부두)가 건설되자 이곳은 부두로 쓰지 않고 그냥 남겨 놓게 되었다. 같은해 말에 시정부에서는 이 다리의 길이와 넓이를 증가시키고 다리끝에 8각정 회란각을 건설하고 관광용 명승지로 되었다. 오늘의 모습은 그 때의 모습이다. 잔교끝의 8각정자는 바로 회란각(廻瀾閣)이고, 다리 오른쪽 바다는 제6 해수욕장, 좀 멀리있는 둥그런 건축물이 海上皇宮으로 홍콩과 합자해 오스트리아의 오페라하우스를 모방해 건축한 식당이다. 그리고 파란색 높은 건축물은 청도세관 빌딩으로 세관부서들이 이곳에서 사무를 보고 있다.

오른쪽 바다를 사이에 두고 먼곳에 섬들이 있는데 이곳이 청도시에 속하는 黃島開發區로 전에는 배를타고 건너갔으나 청도 跨海公路가 건설되어 지금은 다소 편리하게 갈 수가 있다. 잔교의 왼쪽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섬은 소청도라고 하는데 청도의 이름은 바로 이 작은섬으로부터 비롯된다.  이전의 사람들이 주로 이 섬주위에 살고 있었는데 섬은 청정하고 푸르른 소나무로 덮어 잇기에 靑島라 명명되게 되었다. 섬에 하얀 등탑이 있는데 독일이 1901년에 건설하고 배항로를 인도하기위해 세운 것이다. 1941년에 700m에 한 뚝을 쌓아, 지금의 소청도는 육지와 뚝으로 연결되어 있다. 뚝옆의 여러척의 군함은 청도시 해군박물관의 해상전시구역으로 제2차세계대전후 퇴역한 군함이다. 이중 제일앞의 군함은 유소기(劉少奇)의 골회를 뿌린 군함으로 알려진다. 멀리 보이는 TV탑은 중국제일의 강철탑으로 높이가 232m이며, 탑의 꼭대기 뿔같은 모양은 revolving restaurant로 청도시 전경을 볼 수있다. 조금 왼쪽의 3개 정자는小魚山으로 청도시 연해의 아름다운 경치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일본과의 전쟁시 최후로 점령된 곳이기도 하다. 잔교에서 바라 본 것은 청도의 구시로 신도시는 동쪽으로 뻗어있고, 개발구는 황도개발구로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 산동반도 개황

지도상의 산동반도는 낙타의 머리와 같이 황해와 남해바다로 내밀고 있고 다른 부분은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1. 일반 
산동성은 총면적이 153,800㎢로 황하하류에 위치하고, 중화민족의 발상지이다. 민족은 한족이외 38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2. 성소재지
제남시는 고대 문화 유적지인데 大汶口文化와 龍山文化遺蹟이 바로 제남시 주변이다. 제남은 천성(泉城)으로 집집마다 샘물이 나와 건룡 황제가 여러번이나 이곳에 와서 제남 샘물을 “천하제일의 샘“으로 봉했다 한다.

 

3. 태산
五岳의 첫째인 東岳-태산은 산동성 중부에 위치하고 해발이 1504m로 옥황정(玉황頂)의 주봉이다. 역대 황제들이 이곳에 와서 하늘과 땅에  제사하고 나서 산에 올랐다 한다.

 

4. 역사
산동은 齊·魯의 땅으로서 고대 제나라와 노나라가 여기서 발전했다. 춘추시대 노나라의 유명한 사상가 교육가,유가의 창시자인 공자의 고향인 곡부는 산동성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고 맹자 또한 곡부가 고향이다. 공자를 제사하기 위해 역대왕조에서는 孔廟/孔府/孔林을 웅장하게 건설해 왔다.

 

 


□ 청도!! 알고 갑시다 (숨겨진 역사적 사실)

1. 청도시 밑의 현급시인 교남시 낭아대에는 서복의 초상이 세워져 있다. 낭아대는 서
복이 일본으로 출발한 기점으로 전해지는데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자기의 황위를 유지하기 위해,“바다위 神山이라는 곳에 불로장생하는 약이 있다”라는 말을 믿고  신하 서복(徐福)에게 3천명의 동남동녀를 주고 이를 구하게 하였다 한다. 서복은 도사의 일종인 方士라 한다. 결국 서복은 약을 찾지 못하고 진시황을 피해 낭아대에서 일본으로 떠났다 한다. 그래서 지금 일본인들은 서복을 자기 조상으로 여기고 있고 일본에 서복 초상이 있다고 한다.

 

2. 현재 청도시 박물관에는 北魏(남북조시대)때의 石佛像이 있는데 불상 가운데 좀 큰 불상은 머리의 색깔이 몸의 색깔과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좀 작은 것도 손의 색깔이 같지 않다. 이는 일본이 청도에서 물러갈때 불상들의 가치가 높음을 알고 훔쳐 가려했으나 불상들이 돌과 흙으로 만든 것이어서  무거워 가져가지 못하고 머리와 손을 잘라 가지고 갔다 한다. 현재의 불상들은 해방후 정부에서 다시 수리하고 보정한 것이며 당시 잘라간 머리와 손은 지금 일본의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고 함.

 

3. 청말기의 유신(維新) 혁명가이자 무술변법의 수장,정치가인 강유위(康有爲: 1858-1927)의 고향집이 소어산아래 청도 해양대학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강유위는 광동성 사람으로 일찍이 광동성을 떠나 유신사상을 실현키 위해 여기저기 거주하다, 청도에 정착했다. 사후 무덤을 청도시 교외인 象耳山에 두었다가 1895년 청도대학이 건설된 후 생전에 천하의 인재들과 지식을 나누려는 소원을 기리고자 지금의 부산(浮山)으로 이장하였다.


□ 청도의 명승고적

1. 소청도(小靑島)
소청도는 “금(琴)도”라고도 한다. 하늘에서 보면 마치 누워있는 고금과 같다 하여 이와 같이 불린다. 면적이 12,000㎢ 이지만 암석이 청청한 나무에 가려 매우 아름다운 섬이다. 1900년 독일이 높이15.5m의 팔각등대를 건설한 후 청도의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1941년 바다로부터 긴 둑을 쌓아 섬과 연결되고 1987년부터 소청도는 공원으로 개척되었다.

 

2. 노신공원(魯迅公園) 
원래“해변공원”으로 1929년 바다를 특색으로 개척되었다. 1950년에 위대한 사상가 혁명가/문학가인 노신선생을 기념키위해 노신공원이라 개명되었다. 정문의“魯迅公園” 글자는 선생의 필체를 수집해서 쓴 것이며,원내에 선생의 반신동상이 세워있다.

 

3. 중산공원中山公園)
청도에서 가장 큰 공원으로 1,000여묘(苗)에 달하고 매년 4월하순에 “벚꽃축제”를 연다. 원래는 “회전촌”이라는 작은 어촌이었으며 1901년 독일은 땅을 사고 집을 헐어 “산림공원”으로 개척했다. 일본이 강점한 동안 벚꽃을 심고 “욱(旭)공원”이라 개명 했다. 1922년 청도를 되찾은 다음 제1공원이라 불렀고, 그후 1929년 손문선생을 기념키 위해 지금의 중산공원으로 명명되고 있다.

 

4. 팔대관(八大關)
1920년대말 청도정부에서는 태평만가에서 땅을 개간하고 중국인과 외국인을 위해 별장들을 건설하는데, 전후 8갈래의 큰길을 만리장성의 유명한 관역(關驛)을 본따 8대관 이라고 한다. 예를들어 산해관거리,가옥관거리,정양관거리 등등. 이들 별장들은 영국/미국/프랑스/그리스/일본 등 여러 국가의 풍격을 띄고 있어 “건축박물관”이라고도 한다. 산해관거리의 “청도조어대(釣魚臺) ”란 곳은 국가지도자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등소평 역시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하며,화석루(化石樓)는 독일총독의 별장이었다 함. 장개석, 송자문, 공상희등도 이 이역에 별장이 있다. 중국의 영화, TV에 나오는 유럽, 미국의 내용이 대부분 여기서 찍은 것이다.

 

5. 제1 해수욕장
회천만에 위치하기에 회천 해수욕장이라고도 한다. 독일이 청도를 점령한 후 이곳 동쪽을 해상 비행장으로 쓰고 서쪽을 “빅토리아 해수욕장”으로 사용하며, 외국인구역과  중국인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청도를 회수한 후에 지금의 제1해수욕장으로 개명 되었다. 동서의 길이가 500m,넓이는 모래톱에서 상어그물까지 350m,동시에 10만명 수용 가능하다. 모래는 부드럽고 언덕이 높지 않고 물이 맑아“동아시아 제일”의 해수욕장으로 부른다.

 

6. 노산  
청도시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서북으로 시내와 지묵현을 연결하여 청도시 중심과 약 40Km 떨어져 있다. 노산은 해발 1,133m로 산의 총 면적이 386㎢ 이며 동남쪽의 “거봉”이 제일높은 주봉이다. 내륙의 기타 명산들과 비교하면 자연풍경이 독특한데 가 는곳마다 험악한 봉우리와 기괴한 바위,깊은 골짜기로 구성되어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폭의 웅장하고 수려한 그림을 연상케 한다. 노산은 도교의 명산으로 도교의 전진파에 속하는 도사들은 술과 기름진 요리를 먹지 않고, 다른 한지파인 정일(正一)교는 무출가도사라 한다. 노산의 태청궁은 노산도사들이 도를 학습하고 무술을 연마하는 곳이고 《도덕경》을 저작한 노자초상을 모신 곳 이다. 노산의 샘물은 매우 유명하며, 청도맥주는 바로 이곳의 샘물로 만든 것으로 인체에 유익한 광물질이 있어 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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